『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꾸었던 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등성이까지 심겨 있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생각하는 사이 어느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그는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채로 꿈에서 깬다. 경하는 그것이 그 무렵에 꾸었던 다른 악몽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책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꿈이리라고 생각하고, 한때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과 함께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뒤로 몇 해 동안 힘든 시기를 겪고 겨우 삶을 회복하는 사이 계획은 진척되지 못했고, 경하는 자신이 그 꿈을 잘못 이해했다고 마음을 바꾼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경하는 병원에 있는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인선이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은 것. 곧장 병원을 찾은 경하에게 인선은 갑작스레 그날 안에 제주 집에 가 혼자 남은 새를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인선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길로 서둘러 제주로 향한다. 그러나 제주는 때마침 온통 폭설과 강풍에 휩싸여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고질적인 두통에 시달리며, 경하는 가까스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인선의 마을로 향한다. 그러나 정류장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눈길을 헤치고 산을 오르던 길에서 폭설과 어둠에 갇혀 길을 잃는다. 오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